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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dobadalife 님의 블로그</title>
    <link>https://dobadalife.tistory.com/</link>
    <description>dobadalife 님의 블로그 입니다.</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Sat, 8 Aug 2026 15:24:36 +0900</pubDate>
    <generator>TISTORY</gener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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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nagingEditor>dobadalife</managingEditor>
    <item>
      <title>남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지만, 80대 환자는 하루 만에 여성으로 바꿔 달라고 했다</title>
      <link>https://dobadalife.tistory.com/entry/%EB%82%A8%EC%9E%90-%EC%9A%94%EC%96%91%EB%B3%B4%ED%98%B8%EC%82%AC-%EC%9E%90%EA%B2%A9%EC%A6%9D%EC%9D%84-%EB%95%84%EC%A7%80%EB%A7%8C-80%EB%8C%80-%ED%99%98%EC%9E%90%EB%8A%94-%ED%95%98%EB%A3%A8-%EB%A7%8C%EC%97%90-%EC%97%AC%EC%84%B1%EC%9C%BC%EB%A1%9C-%EB%B0%94%EA%BF%94-%EB%8B%AC%EB%9D%BC%EA%B3%A0-%ED%96%88%EB%8B%A4</link>
      <description>&lt;p&gt;80대 환자를 소개받아 일을 시작한 다음 날, 센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환자가 50대 여성 요양보호사를 원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66세에 수강생 40~50명 중 남자 두 명뿐인 교실에서 공부해 자격증까지 땄지만, 내 첫 요양보호사 일은 하루 만에 끝났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아찔했던 일은 교육 중 현장 실습에서 벌어졌습니다.&lt;/p&gt;

&lt;h2&gt;수강생 40~50명 중 남자는 두 명뿐이었다&lt;/h2&gt;

&lt;p&gt;노인 인구가 계속 늘고 돌봄이 필요한 사람도 많아진다는 이야기를 신문과 방송에서 자주 접했습니다. 실제로 내 주변만 봐도 나이 든 사람이 많았고, 거동이 불편하거나 혼자 생활하기 어려운 사람도 자꾸 늘어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lt;/p&gt;

&lt;p&gt;당시 나는 마땅히 할 일도 없었고 새로 취직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집에만 있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무엇이라도 공부해보고 싶어 국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요양보호사 교육기관에 등록했습니다. 내 나이는 66세였습니다.&lt;/p&gt;

&lt;p&gt;한 반에서 약 40~50명이 함께 수업을 들었습니다. 대부분 30대부터 50대까지의 여성이었습니다. 남자는 나를 포함해 두 명뿐이었고, 다른 한 명은 30대였습니다. 수십 명의 여성 사이에 66세 남자가 앉아 공부하는 모습이 나도 처음에는 낯설었습니다.&lt;/p&gt;

&lt;p&gt;당시 교육은 한 달가량 이어졌습니다. 이론을 배우고 현장 실습도 했습니다. 평생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동작과 상황이 계속 나왔습니다. 수업 후반에는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부축하고 몸을 움직여주는 연습도 했습니다.&lt;/p&gt;

&lt;p&gt;연습 상대가 여성 교육생일 때에는 신체 접촉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여성 교육생과 신체를 접촉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많이 쑥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몇 번 반복하니 할 만했습니다.&lt;/p&gt;

&lt;p&gt;교실에서 동작을 따라 할 때에는 힘이 들어도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 일을 너무 가볍게 보고 있었다는 사실은 실제 현장 실습에 나가서 알게 됐습니다.&lt;/p&gt;

&lt;h2&gt;화장실 안전 손잡이가 환자와 나를 지켰다&lt;/h2&gt;

&lt;p&gt;현장 실습에서 뇌졸중 환자의 화장실 이동을 돕게 됐습니다. 환자는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기 어려웠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무거웠습니다. 나는 환자의 몸을 받치고 화장실로 이동하려 했습니다.&lt;/p&gt;

&lt;p&gt;그러다 내 다리가 무게를 버티지 못했습니다. 환자를 붙잡은 채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교육에서 배운 동작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 사람의 체중이 한꺼번에 실리자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lt;/p&gt;

&lt;p&gt;다행히 환자가 놀라는 순간에도 화장실 안전 손잡이를 꽉 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기존에 근무하던 선배 요양보호사가 바로 달려와 도와줬고, 환자는 넘어지지 않고 무사했습니다. 나는 발목 인대가 조금 늘어났지만 큰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lt;/p&gt;

&lt;p&gt;환자가 손잡이를 놓쳤거나 선배 요양보호사가 가까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하니 아찔했습니다. 힘만 있으면 사람을 부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환자의 상태와 이동 경로를 보고, 손잡이 위치를 확인하고, 혼자 감당하기 어려우면 도움을 요청해야 했습니다.&lt;/p&gt;

&lt;p&gt;그날 나는 요양보호사 일이 정말 힘들다는 것을 몸으로 알았습니다. 모든 일을 만만하게 보면 안 되고, 항상 긴장하며 안전하게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뒤로 헬스장에 가서 근력운동을 더 열심히 했습니다. 지금 70세가 된 뒤에도 근력운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lt;/p&gt;

&lt;h2&gt;자격증을 땄지만 취업 하루 만에 교체됐다&lt;/h2&gt;

&lt;p&gt;교육을 무사히 마치고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취득했습니다. 현장 실습에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자격증을 손에 쥐었으니 이제 환자를 소개받아 일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lt;/p&gt;

&lt;p&gt;요양보호 관련 센터에서 약 80세의 환자를 소개해줬습니다. 거동이 조금 불편했고 성격도 까다로운 편이었습니다. 나는 일단 맡은 일을 해보려고 했습니다.&lt;/p&gt;

&lt;p&gt;하지만 일을 시작한 지 하루 만에 교체 연락이 왔습니다. 환자가 센터에 전화해 50대 정도의 여성 요양보호사를 원한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환자 가족은 내게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가족이 사과해준 덕분에 속상한 마음을 조금은 참을 수 있었습니다.&lt;/p&gt;

&lt;p&gt;그래도 솔직한 생각은 따로 있었습니다.&lt;/p&gt;

&lt;p&gt;&lt;strong&gt;“내가 이거 아니면 못 먹고 사나.”&lt;/strong&gt;&lt;/p&gt;

&lt;p&gt;자격증을 따기 전에는 일의 어려움만 생각했습니다. 막상 자격증을 따고 나니 남자 요양보호사를 불편하게 느끼는 환자가 있고, 환자가 원하는 성별에 따라 하루 만에도 교체될 수 있다는 현실을 알게 됐습니다. 내가 자격증을 가졌다는 사실과 환자가 나를 선택하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였습니다.&lt;/p&gt;

&lt;p&gt;그 일을 겪고 나서는 낯선 환자보다 가족이나 지인, 친구처럼 가까운 사람을 돌볼 때 내 자격증을 더 현실적으로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운전을 할 수 있으니 환자의 병원 이동이나 외출을 돕는 운전 관련 일이라면 다시 해보고 싶은 마음도 남아 있습니다.&lt;/p&gt;

&lt;h2&gt;90세 장모를 돌보기 위해 아내도 자격증을 땄다&lt;/h2&gt;

&lt;p&gt;홀로된 장모님은 당시 90세였고, 아내가 모시고 있었습니다. 나도 시골에 자주 내려갔습니다. 장모님은 요양등급을 받을 수 있어 가족이 직접 돌보는 방법을 생각하게 됐습니다.&lt;/p&gt;

&lt;p&gt;내가 먼저 요양보호사 교육과 실습을 경험하고 나니 아내도 자격증을 갖추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교육기관 등록을 권했습니다. 아내는 학원에 다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자기 어머니를 직접 돌볼 준비를 갖췄습니다.&lt;/p&gt;

&lt;p&gt;내 첫 요양보호사 일은 하루 만에 끝났지만 자격증이 아무 쓸모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가족 안에서 누가 누구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는지 생각하게 했고, 아내가 장모님을 돌볼 준비를 갖추는 계기가 됐습니다.&lt;/p&gt;

&lt;p&gt;친구들 중에는 내게 무엇이 답답해서 생뚱맞게 그런 일을 하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나이가 들어서도 무엇이든 해보려는 의지가 대단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lt;/p&gt;

&lt;p&gt;요양보호사를 우습게 보는 친구에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lt;/p&gt;

&lt;p&gt;&lt;strong&gt;“우리 가족 중 누구라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온다. 용기가 있으면 너도 요양보호사 자격증에 도전해봐라.”&lt;/strong&gt;&lt;/p&gt;

&lt;p&gt;나는 70세인 지금도 요양보호사의 끈을 완전히 놓지 않았습니다. 운전을 활용할 수 있는 돌봄 일자리가 있다면 해보고 싶고, 치매와 관련된 공부도 더 해볼 생각입니다. 하루 만에 교체됐다는 사실보다, 환자 한 사람을 안전하게 돌보는 일이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직접 배운 경험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lt;/p&gt;

&lt;p&gt;※ 이 글의 교육 기간과 현장 실습은 필자가 66세 때 겪은 개인 경험입니다. 현재 요양보호사 교육과정과 취업 조건은 당시와 다를 수 있습니다.&lt;/p&gt;</description>
      <category>노인</category>
      <author>dobadalif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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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8 Aug 2026 12:09:32 +0900</pubDate>
    </item>
    <item>
      <title>4억 5천만 원 시골집이 10개월째 팔리지 않았다, 66세에 굴삭기를 배웠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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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은퇴한 뒤 아내와 함께 시골로 들어갔습니다. 아내의 오빠가 가지고 있던 집과 땅을 별다른 준비 없이 사게 된 것입니다.&lt;/p&gt;

&lt;p&gt;25평 정도 되는 전원주택 한 채와 큰 창고 한 채가 있었습니다. 야산은 약 4만 평이었고 주변 전답도 2천 평 정도 됐습니다. 매매가격은 약 4억 5천만 원이었습니다.&lt;/p&gt;

&lt;p&gt;당시는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 가격이면 적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나도 공인중개사 자격이 있었고 잠시 중개 업무를 해봤으며, 아들도 투잡으로 부동산 중개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lt;/p&gt;

&lt;p&gt;2~3년 정도 보유한 뒤 다시 팔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동산을 조금 안다는 마음이 오히려 내 판단을 낙관적으로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lt;/p&gt;

&lt;h2&gt;4만 평 야산보다 무거웠던 3억 5천만 원 대출&lt;/h2&gt;

&lt;p&gt;집과 땅을 살 때 지역농협에서 약 3억 5천만 원을 담보대출로 받았습니다. 구입 후 1년 정도는 이자가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lt;/p&gt;

&lt;p&gt;내 기억으로는 당시 2.8% 정도였던 금리가 이후 약 5%까지 올랐습니다. 이자만 오른 것이 아니라 원금도 함께 갚아야 했습니다.&lt;/p&gt;

&lt;p&gt;국민연금을 받으면 생활비보다 은행 원금과 이자를 내는 일이 앞섰습니다. 돈이 모자랄 때에는 도시에 사는 아들이 조금씩 보태주기도 했습니다.&lt;/p&gt;

&lt;p&gt;하지만 아들의 부동산 사무실도 경기가 나빠 수입이 많이 줄었습니다. 우리도 제때 돈을 맞추지 못해 가끔 은행 연체가 생겼습니다.&lt;/p&gt;

&lt;p&gt;아내가 말했습니다.&lt;/p&gt;

&lt;p&gt;&lt;strong&gt;“이대로는 안 된다. 본전이라도 받고 다시 팔자.”&lt;/strong&gt;&lt;/p&gt;

&lt;p&gt;읍내 주변 부동산에 집과 땅을 내놓았습니다. 가격을 더 받아보겠다는 생각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산 금액만이라도 받고 빠져나오고 싶었습니다.&lt;/p&gt;

&lt;p&gt;매물로 내놓고 약 10개월을 기다렸지만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살 때는 2~3년 뒤 매매를 생각했지만, 막상 팔려고 하니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lt;/p&gt;

&lt;h2&gt;아내는 목욕탕 카운터로, 나는 풀밭으로 갔다&lt;/h2&gt;

&lt;p&gt;집이 팔릴 때까지 어떻게든 버텨야 했습니다. 아내는 읍내 목욕탕 카운터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나는 틈틈이 농사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lt;/p&gt;

&lt;p&gt;처음 손댄 것은 간단한 채소였습니다. 채소를 심는 일보다 더 힘든 것은 땅을 고르고 계속 자라는 풀을 베는 일이었습니다.&lt;/p&gt;

&lt;p&gt;도시에서 보던 시골집은 넓고 조용해 보였습니다. 직접 살아보니 넓은 땅은 바라보는 풍경이 아니라 계속 손을 대야 하는 일이었습니다.&lt;/p&gt;

&lt;p&gt;풀베기와 땅고르기를 하면서 장비가 없으면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수할 때에는 중장비를 배울 계획이 전혀 없었지만, 집이 팔리지 않으니 내가 땅에서 버틸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lt;/p&gt;

&lt;p&gt;그렇게 경남 김해에 있는 중장비 학원을 알아봤습니다. 그때 내 나이는 66세였습니다.&lt;/p&gt;

&lt;h2&gt;지게차 시험의 2초 부족이 30초 여유로 바뀌었다&lt;/h2&gt;

&lt;p&gt;학원 한 반에는 수강생이 약 30명 있었습니다. 대부분 20대부터 50대였고, 할아버지처럼 보이는 사람은 나 혼자였습니다.&lt;/p&gt;

&lt;p&gt;나도 젊어 보이고 싶어서 청바지를 입고 다녔습니다. 젊은 수강생들과 젊은 선생님 사이에 섞여 수업을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66세에 시작한 겁 없는 도전이었습니다.&lt;/p&gt;

&lt;p&gt;한 달간 수업을 받은 뒤 굴삭기 실기시험에 한 번 만에 합격했습니다. 굴삭기가 한 번에 되니 지게차도 곧 붙을 줄 알았습니다.&lt;/p&gt;

&lt;p&gt;일주일 뒤 치른 지게차 실기시험에서는 떨어졌습니다. 다시 일주일 뒤 두 번째 시험에 도전했지만 이번에는 통과 시간에서 단 2초가 부족했습니다.&lt;/p&gt;

&lt;p&gt;전진할 때 가속페달을 밟아야 하는데 순간적으로 브레이크를 잘못 밟았던 것 같습니다. 겨우 2초 때문에 다시 떨어졌다는 사실이 너무 억울했습니다.&lt;/p&gt;

&lt;p&gt;지인에게 부탁해 밤늦게까지 지게차를 다시 연습했습니다. 동작 순서를 되풀이하고 시간을 줄이는 연습을 한 뒤, 또 일주일 후 세 번째 시험장에 들어갔습니다.&lt;/p&gt;

&lt;p&gt;세 번째 시험에서는 제한시간보다 무려 30초를 남기고 합격했습니다. 지난 시험의 2초 부족이 이번에는 30초의 여유로 바뀌었습니다.&lt;/p&gt;

&lt;p&gt;지게차 합격이 대출을 없애주거나 집을 팔아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집이 팔리지 않는 동안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 더 만들어줬습니다.&lt;/p&gt;

&lt;p&gt;내 시골생활의 기억에는 예쁜 전원주택만 남아 있지 않습니다. 3억 5천만 원 대출, 국민연금으로 갚던 원금과 이자, 10개월 동안 조용했던 부동산 연락, 목욕탕 카운터로 출근한 아내, 청바지를 입고 학원에 간 66세의 내가 함께 남아 있습니다.&lt;/p&gt;

&lt;p&gt;그래서 누가 시골생활이 어떠냐고 물으면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lt;/p&gt;

&lt;p&gt;&lt;strong&gt;“시골생활, 아무나 못하지요. 나는 팔리지 않는 집에서 버티려고 굴삭기부터 배웠습니다.”&lt;/strong&gt;&lt;/p&gt;

&lt;p&gt;※ 대출 금리와 당시 시점은 개인의 기억을 기준으로 작성했습니다.&lt;/p&gt;</description>
      <category>노인</category>
      <author>dobadalif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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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7 Aug 2026 19:37:21 +0900</pubDate>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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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개인정보처리방침</title>
      <link>https://dobadalife.tistory.com/pages/%EA%B0%9C%EC%9D%B8%EC%A0%95%EB%B3%B4%EC%B2%98%EB%A6%AC%EB%B0%A9%EC%B9%A8</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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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lt;strong&gt;시행일: 2026년 8월 7일&lt;/strong&gt;&lt;/p&gt;</description>
      <author>dobadalif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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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7 Aug 2026 15:04:42 +0900</pubDate>
    </item>
    <item>
      <title>면책조항</title>
      <link>https://dobadalife.tistory.com/pages/%EB%A9%B4%EC%B1%85%EC%A1%B0%ED%95%AD</link>
      <description>&lt;p&gt;본 블로그는 1957년생 남성이 직접 겪은 노년의 일상과 가족관계, 건강, 간병, 은퇴 후 생활, 연금, 부동산 등에 관한 경험을 기록하는 개인 블로그입니다. 블로그에서 제공하는 내용은 개인적인 경험과 일반적인 정보 공유를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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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블로그의 내용은 의료·법률·세무·금융·부동산 분야의 전문적인 진단이나 상담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같은 나이와 비슷한 상황이라도 건강 상태, 가족관계, 재산과 계약 조건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lt;/p&gt;

&lt;p&gt;질병의 치료와 약 복용, 연금 신청, 세금 신고, 부동산 계약 등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에는 이 블로그의 글만으로 판단하지 마시고 의사, 변호사, 세무사, 공인중개사 또는 관계 기관의 최신 안내를 함께 확인하시기 바랍니다.&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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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lt;strong&gt;문의 이메일: d01086679675@gmail.com&lt;/strong&gt;&lt;/p&gt;

&lt;p&gt;&lt;strong&gt;시행일: 2026년 8월 7일&lt;/strong&gt;&lt;/p&gt;</description>
      <author>dobadalife</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dobadalife.tistory.com/pages/%EB%A9%B4%EC%B1%85%EC%A1%B0%ED%95%AD</guid>
      <pubDate>Fri, 7 Aug 2026 14:58:16 +0900</pubDate>
    </item>
    <item>
      <title>소개 및 문의</title>
      <link>https://dobadalife.tistory.com/pages/%EC%86%8C%EA%B0%9C-%EB%B0%8F-%EB%AC%B8%EC%9D%98</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안녕하세요. 이곳은 1957년생 남자가 자신의 노년을 직접 기록하는 블로그입니다. 2026년 기준 세는나이로 70살이 되었고, 아내와 함께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나는 유명인도, 노후 전문가도 아닙니다. 회사에 다니며 가족을 책임졌고, 부모님의 치매와 간병을 겪었으며, 은퇴 후에는 공인중개사 시험에도 도전했습니다. 잘한 일뿐 아니라 가족에게 미안했던 일과 뒤늦게 깨달은 마음까지 솔직하게 남기려 합니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노인의 삶을 기록합니다&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블로그에서는 은퇴 후의 하루, 건강과 병원 경험, 부부와 자녀&amp;middot;손주 이야기, 치매 부모 간병, 연금과 생활비, 친구 관계, 외로움과 작은 즐거움처럼 나이가 들며 실제로 마주하는 일을 다룹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같은 70살이라도 건강과 형편, 가족관계는 모두 다릅니다. 이곳의 글은 모든 노인을 대표하는 정답이 아니라, 1957년생 남자 한 사람이 겪은 삶과 현재의 생각을 담은 개인 기록입니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글을 쓰는 기준&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모든 글은 내가 직접 겪은 사건과 기억에서 출발합니다. 일부 글은 가족이 질문하고 내가 답한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하지만, 글 속 경험과 감정은 실제 이야기를 기준으로 합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날짜, 금액, 시험 결과, 제도처럼 확인이 필요한 내용은 가능한 범위에서 기록이나 공식 자료를 대조합니다. 가족과 지인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이름과 장소 등 일부 정보는 공개하지 않거나 바꿀 수 있습니다. 잘못된 내용은 확인 후 수정하겠습니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정보 이용 안내&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글에는 수술, 병원, 약, 치매 간병, 연금, 부동산, 생활비와 관련된 개인 경험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내용은 의료&amp;middot;법률&amp;middot;세무&amp;middot;금융 분야의 전문적인 진단이나 자문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에는 전문가나 관계 기관의 최신 안내를 함께 확인하시기 바랍니다.&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광고와 저작권&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광고나 제휴 링크가 포함된 글은 독자가 알 수 있도록 표시하겠습니다. 개인 경험을 과장하거나 사용하지 않은 상품을 경험한 것처럼 쓰지 않겠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블로그의 글과 직접 제작한 이미지를 허락 없이 복사하거나 다른 블로그, 카페, 영상, 전자책 등에 다시 게시할 수 없습니다. 인용이나 상업적 이용이 필요한 경우에는 사전에 문의해 주세요.&lt;/p&gt;
&lt;h2 data-ke-size=&quot;size26&quot;&gt;문의&lt;/h2&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게시글의 오류 및 정정, 개인정보나 사진 삭제, 콘텐츠 인용, 노인의 삶과 관련된 사연, 인터뷰&amp;middot;광고&amp;middot;협업 제안은 아래 이메일로 보내주세요. 관련 글의 주소와 문의 목적을 함께 적어주시면 확인에 도움이 됩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문의 이메일: d01086679675@gmail.com&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보내주신 개인정보와 사연은 문의 확인과 답변을 위해서만 사용하며, 별도의 동의 없이 공개하지 않습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70살의 삶은 끝난 뒤를 정리하는 시간만은 아닙니다. 이 블로그는 한 노인이 오늘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꾸밈없이 오래 남겨두는 곳입니다.&lt;/p&gt;
&lt;p&gt;&lt;strong&gt;시행일: 2026년 8월 7일&lt;/strong&gt;&lt;/p&gt;</description>
      <author>dobadalife</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dobadalife.tistory.com/pages/%EC%86%8C%EA%B0%9C-%EB%B0%8F-%EB%AC%B8%EC%9D%98</guid>
      <pubDate>Fri, 7 Aug 2026 14:53:23 +0900</pubDate>
    </item>
    <item>
      <title>아버지 치매 15년&amp;middot;어머니 5년, 공인중개사 3수가 나의 반항이었다</title>
      <link>https://dobadalife.tistory.com/entry/%EC%95%84%EB%B2%84%EC%A7%80-%EC%B9%98%EB%A7%A4-15%EB%85%84%C2%B7%EC%96%B4%EB%A8%B8%EB%8B%88-5%EB%85%84-%EA%B3%B5%EC%9D%B8%EC%A4%91%EA%B0%9C%EC%82%AC-3%EC%88%98%EA%B0%80-%EB%82%98%EC%9D%98-%EB%B0%98%ED%95%AD%EC%9D%B4%EC%97%88%EB%8B%A4</link>
      <description>&lt;p&gt;“아버지 치매 15년, 어머니 5년 모심. 그래도 살아계셨을 때가 그립다.”&lt;/p&gt;

&lt;p&gt;그 세월은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버티고, 서로 모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일은 나아질 것이라 말하며 살았던 시간이었다. 회사생활을 마친 뒤에도 다 끝난 사람처럼 지내고 싶지 않아 공인중개사 시험을 붙들었다. 아들은 한 번에 붙었지만 나는 세 번을 치렀고, 떨어진 줄 알았던 마지막 시험은 문제 하나로 뒤집혔다.&lt;/p&gt;

&lt;h2&gt;아버지 치매 15년·어머니 5년, 월급 200만원으로 버틴 시간&lt;/h2&gt;

&lt;p&gt;아버지는 치매로 15년 정도 사셨고 어머니는 5년 정도 사셨다. 두 분을 모시는 동안 힘든 일이 많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래도 살아계셨을 때가 그립다. 치매를 앓기 전의 부모님만 그리운 것도 아니다. 말이 잘 통하지 않고 같은 일을 되풀이하던 그때의 모습도 이제는 다시 볼 수 없으니 그립다.&lt;/p&gt;

&lt;p&gt;사실 몸이 제일 힘들었던 사람은 내가 아니라 집사람이었다. 집사람은 치매 부모를 공양하면서도 틈틈이 일하러 다녔다. 집안일도 해야 했고 부모님도 살펴야 했고, 돈이 부족하니 바깥일도 놓을 수 없었다. 나는 회사에 다닌다는 이유로 그 무게를 집사람에게 많이 넘겼던 것 같다.&lt;/p&gt;

&lt;p&gt;그때 내가 집사람에게 자주 한 말은 조금만 고생하자는 말이었다. 나중에는 뭐든지 다 해주겠다고 했다. 그 말을 할 때는 나도 진심이었을 것이다. 언젠가는 형편이 나아지고 집사람이 고생한 만큼 편하게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lt;/p&gt;

&lt;p&gt;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거짓 위로가 되었다. 내 능력에는 한계가 있었고 회사 월급은 뻔했다. 내가 많이 벌어와야 집사람에게 무엇이라도 해줄 수 있는데 현실에서는 해줄 것이 별로 없었다. 약속은 크게 해놓고 그대로 해주지 못한 내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lt;/p&gt;

&lt;p&gt;당시 내 월급은 200만원 정도였다. 그 돈으로 생활하고 부모님을 모시려니 항상 부족했다. 돈이 많이 나간 곳을 생각하면 대부분은 가사에 들어갔지만, 내 개인적인 사회생활에 쓴 돈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돈이 부족하다고 말하면서도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lt;/p&gt;

&lt;p&gt;친구나 회사 동료들과 술을 마시면 남보다 먼저 술값을 내곤 했다. 프라이드와 자존심은 강해서 밖에서는 부족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그 술값만큼 생활비가 줄어드는 것이었다. 이제 와 생각하면 나는 밖에서는 좋은 사람 소리를 듣고 싶어 하면서 가정에는 불합격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lt;/p&gt;

&lt;p&gt;그 시간에는 부모님이 오래 사시는 것이 힘들다고 느낀 적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두 분이 모두 돌아가시고 나니 힘들었다는 기억보다 집 안에 부모님이 계셨다는 사실이 더 크게 남았다. 다시 모실 수 있다면 잘할 수 있다고 큰소리칠 수는 없다. 그래도 한 번만 더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생각은 한다.&lt;/p&gt;

&lt;h2&gt;가정에는 불합격, 그래도 순리대로 살았다&lt;/h2&gt;

&lt;p&gt;집사람도 내가 어디에 돈을 쓰는지 알고 있었다. 월급이 넉넉하지 않은데 남편은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술자리에서는 먼저 계산했다. 집사람 눈에는 내가 무능하고 능력이 부족하며 앞으로의 비전도 별로 없는 남편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집사람은 부모님을 모시는 중에도 알바 같은 일을 하게 되었다.&lt;/p&gt;

&lt;p&gt;집사람이 한 말 중에 아직 기억나는 것이 있다. 진심이었는지 우스갯소리였는지는 모르겠다. 남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을 잘 벌어 오는데, 너무 깨끗하게 사는 것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사고도 좀 치고 변칙도 쓰고, 높은 사람을 찾아가 아부도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쉽게 이야기했다.&lt;/p&gt;

&lt;p&gt;그 말을 하고 나면 집사람도 금방 후회하곤 했다. 정말로 내가 사고를 치거나 나쁜 일을 해서 돈을 벌어 오라는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부모님을 모시고 생활비를 맞추며 몸까지 힘드니 답답해서 나온 말이었을 것이다. 나도 그 말을 들을 때 집사람을 탓할 수 없었다.&lt;/p&gt;

&lt;p&gt;나 역시 잠깐은 얍삽하게 살아볼까 생각한 적이 있다. 조금 변칙적으로 살고 높은 사람에게 잘 보이면 지금보다 돈을 더 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남들은 그렇게라도 자기 가족을 편하게 해주는 것 같은데, 나는 원칙만 이야기하며 능력 없는 사람으로 남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lt;/p&gt;

&lt;p&gt;그래도 결국에는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고 내 자신을 타일렀다. 내가 대단히 바르고 훌륭한 사람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한 번 쉽게 가기 시작하면 그다음에는 어디까지 가야 할지 나도 자신이 없었다. 돈을 더 벌지 못하는 답답함은 있었지만, 적어도 집에 들어갈 때 무엇을 숨기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lt;/p&gt;

&lt;p&gt;나는 지금도 집사람에게 했던 말을 생각한다. 조금만 고생하면 나중에 다 해주겠다는 말이다. 그 약속을 다 지켰다고 할 수는 없다. 부모님을 직접 돌보고 일까지 다닌 집사람의 시간을 돈으로 갚을 수도 없다. 그래서 내 인생을 순리대로 잘 살았다는 말만으로 스스로에게 합격을 주기도 어렵다.&lt;/p&gt;

&lt;h2&gt;한 문제를 끝까지 확인한 아들, 나는 32회 합격생이 되었다&lt;/h2&gt;

&lt;p&gt;하나뿐인 외아들이 대학을 마치고 취직하고 결혼했고, 나도 회사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때는 부모님도 두 분 다 돌아가신 뒤였다. 아직 내게 의지와 열정이 남아 있을 때 무엇인가 새로 해보고 싶었다. 그 무렵 공인중개사 시험이 한창 열풍이었고 나도 한번 도전해보기로 했다.&lt;/p&gt;

&lt;p&gt;아들과 같이 공부를 시작했다. 아들은 한 번에 합격했다. 나는 첫 번째 시험에서 1차는 붙었지만 2차에서 떨어졌다. 처음부터 쉬운 시험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공부를 시작한 아들이 바로 붙고 나는 떨어지니 마음이 복잡했다.&lt;/p&gt;

&lt;p&gt;그다음 해에는 2차 시험만 치면 되었다. 한 번 떨어져봤으니 두 번째에는 되겠지 싶었지만 또 떨어지고 말았다. 시간은 많았는데 나이가 있으니 공부한 것이 머릿속에 들어왔다가도 금방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한 번 떨어졌을 때와 두 번 떨어졌을 때의 기분은 달랐다. 내가 이 나이에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나 싶었다.&lt;/p&gt;

&lt;p&gt;그래도 책을 놓지는 않았다. 세 번째 시험에는 다시 1차와 2차를 같이 준비해야 했다. 하루 종일 동영상 강의를 들었고 하루 종일 모의고사를 풀었다. 틀린 문제를 다시 보고 돌아서면 또 헷갈렸다. 공부할 시간은 충분했지만 긴 시간 책상에 앉아 있는 일 자체가 쉽지는 않았다.&lt;/p&gt;

&lt;p&gt;이상하게도 힘들기만 한 시간은 아니었다. 회사에서 시킨 일도 아니고 누가 억지로 하라고 한 공부도 아니었다. 내 선택으로 강의를 듣고 문제를 풀었다. 이 나이에 무엇을 하나 싶은 날도 있었지만, 아직 내가 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결과와 별개로 꽤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lt;/p&gt;

&lt;p&gt;세 번째 시험을 치르고 가채점을 했을 때는 한 문제 차이로 떨어진 것으로 나왔다. 또 떨어졌다는 생각에 정말 허탈했다. 두 번 실패하고 다시 1차와 2차를 모두 공부했는데 한 문제 때문에 안 된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들인 시간이 한꺼번에 무거워졌다.&lt;/p&gt;

&lt;p&gt;그런데 아들이 중개사법에서 이의제기된 문제 하나를 찾아냈다. 그 문제가 응시자 모두 정답으로 처리되면 내 점수가 합격선에 들어간다고 했다. 아들은 그 뒤로도 그 문제가 정말 모두 정답 처리되는지 계속 확인했다. 다시 점수를 계산하면 합격이었지만, 최종 정답이 나오기 전까지는 완전히 합격이라고 믿을 수 없었다.&lt;/p&gt;

&lt;p&gt;최종 정답지가 배포되었을 때 아들이 확인하던 문제는 모두 정답으로 처리되었다. 그제야 내 점수가 합격선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았다. 떨어진 줄 알았던 시험이 한 문제로 뒤집혔다. 합격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확인하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정말 이보다 행복할 수 없었다.&lt;/p&gt;

&lt;p&gt;공인중개사 합격증을 다시 꺼내 확인해보니 나는 제32회 합격생이었다. 내가 인생에서 쳐본 시험 중에 가장 공을 많이 들였고 가장 힘들었던 시험이었다. 아들은 한 번에 붙었지만 나는 세 번 걸렸다. 그래서 내 합격은 내게 더 크게 남았다.&lt;/p&gt;

&lt;p&gt;합격을 확인하고 나서는 그동안 보던 어마어마한 책과 모의고사 시험지, 내가 공부하며 쓴 종이들을 모두 한 번에 버렸다. 그 많은 것을 버렸는데도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홀가분했다. 세 번에 걸친 내 시험은 그제야 완전히 끝났다.&lt;/p&gt;</description>
      <category>노인</category>
      <author>dobadalif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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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6 Aug 2026 20:13:17 +0900</pubDate>
    </item>
    <item>
      <title>70대 은퇴자 일상, 목욕탕 탕 속에서도 걱정이 맴돌았다</title>
      <link>https://dobadalife.tistory.com/entry/70%EB%8C%80-%EC%9D%80%ED%87%B4%EC%9E%90-%EC%9D%BC%EC%83%81-%EB%AA%A9%EC%9A%95%ED%83%95-%ED%83%95-%EC%86%8D%EC%97%90%EC%84%9C%EB%8F%84-%EA%B1%B1%EC%A0%95%EC%9D%B4-%EB%A7%B4%EB%8F%8C%EC%95%98%EB%8B%A4</link>
      <description>&lt;p&gt;따뜻한 물에 몸을 담갔는데 걱정이 먼저 들어왔다. 예전 같았으면 탕 속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몸이 풀리고 목욕하는 기분이 들었다. 편안하려고 들어간 곳이니 머릿속도 자연스럽게 조용해졌다.&lt;/p&gt;

&lt;p&gt;그런데 은퇴하고, 특히 70살이 되고부터는 같은 자리에 앉아 있어도 예전 같은 편안함이 잘 들지 않았다. 따뜻한 물은 그대로인데 내 생각만 달라진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 평소에는 그냥 지나갔던 생각들이 하나씩 머릿속에 들어왔다.&lt;/p&gt;

&lt;p&gt;생각한다고 답이 바로 나오는 것도 아닌데 다른 생각으로 쉽게 넘어가지도 않았다. 몸은 따뜻한 물속에 있는데 마음은 쉬지 못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목욕탕에서까지 이러나 싶었다. 70살이 되고 보니 몸을 쉬게 한다고 마음까지 저절로 편안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lt;/p&gt;

&lt;h2&gt;앞으로도 무난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lt;/h2&gt;

&lt;p&gt;요즘 내 머릿속에 자주 떠오르는 것은 앞으로 경제적으로 무난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다.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나도 앞으로 살아갈 날이 생각보다 많이 남았을 수 있다. 당장 생활이 어렵다는 것은 아니지만 남은 시간이 길어진다면 지금처럼 별문제 없이 계속 살아갈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lt;/p&gt;

&lt;p&gt;건강에 대한 걱정도 가끔 따라온다. 나는 13년 전에 위와 대장 쪽으로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지금은 의사도 거의 완쾌되었다고 말하고 있고, 나도 그 병 때문에 일상생활을 하는 데 큰 문제가 있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밥을 먹고 동네를 걷고 목욕탕에 다니는 평범한 생활도 그대로 하고 있다.&lt;/p&gt;

&lt;p&gt;그래도 한 번 큰 수술을 받은 기억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평소에는 별생각 없이 지내다가도 가만히 있는 순간에는 예전의 병이 다시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지금 어디가 특별히 아파서 하는 걱정은 아니다. 거의 완쾌되었다고 들었어도 앞으로도 계속 괜찮을지는 내가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걱정이다.&lt;/p&gt;

&lt;p&gt;결국 내가 걱정하는 것은 돈 하나도 아니고 건강 하나도 아니다. 앞으로 살아갈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지만, 그 시간을 경제적으로나 건강으로나 무난하게 지나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먼 훗날의 일처럼 생각했던 문제들이 70살이 되고 나서는 조금 더 가까이 느껴진다.&lt;/p&gt;

&lt;h2&gt;은퇴 10년, 열정보다 마음 편한 게 최고&lt;/h2&gt;

&lt;p&gt;나는 부산시설관리공단에서 은퇴한 지 10년 정도 되었다. 직장에 다닐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무언가를 해보려는 열정이 많이 줄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야 했고 해야 할 일도 있었다. 지금은 내가 마음먹지 않으면 굳이 시작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많다.&lt;/p&gt;

&lt;p&gt;하고 싶은 일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무엇에 도전하는 사람을 보면 생각으로는 멋지고 좋아 보인다. 나도 저런 것을 한번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lt;/p&gt;

&lt;p&gt;은퇴 전에는 열심히 움직이고 무언가를 이루는 것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마음 편한 게 최고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하게 지내는 것은 아니다. 편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있으면서도 이렇게 별다른 도전 없이 지내도 괜찮은가 하는 생각도 같이 든다.&lt;/p&gt;

&lt;p&gt;70살이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모든 욕심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도 가끔 무엇을 새로 해볼까 생각한다. 다만 예전처럼 생각이 들었다고 바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지금의 생활을 흔들면서까지 해야 할 일인지, 시작한 뒤에도 계속 감당할 수 있을지를 한 번 더 생각한다. 도전하는 모습은 멋있어 보여도 내가 직접 실행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다.&lt;/p&gt;

&lt;h2&gt;타로 자격증, 권리금 듣고 바로 접은 이유&lt;/h2&gt;

&lt;p&gt;나는 타로 자격증이 있다. 아마 내가 이런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거창하게 새로운 직업을 가지려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은퇴하고 심심하기도 했고 타로를 보는 것이 재미있어서 배우다 보니 자격증까지 따게 되었다.&lt;/p&gt;

&lt;p&gt;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타로를 봐주는 가게들이 보인다. 나도 자격증이 있으니 타로 가게를 한번 차려볼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카드를 봐주면서 지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취미로 하던 일을 가게에서 해보는 모습을 생각으로 그려보기도 했다.&lt;/p&gt;

&lt;p&gt;그런데 실제로 가게를 차리려면 권리금도 필요하고 돈이 제법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접었다. 우아, 혼자 재미로 하는 것과 가게를 얻어 장사로 시작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구나 싶었다. 돈을 크게 들여서까지 시작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lt;/p&gt;

&lt;p&gt;그래서 지금은 혼자 타로를 보거나 친구와 지인들에게 재미로 봐주고 있다. 친구들도 처음에는 신통치 않게 생각한다. 그러다가 나중에 내가 봐줬던 내용과 비슷한 일이 생기면 갑자기 연락해 신기하다고 말하기도 한다.&lt;/p&gt;

&lt;p&gt;한번은 저녁에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전에 타로를 봤던 것이 생각났다며 신기하다고 했다. 그 친구가 내게 물어본 것은 동창회 모임에 가입할까 말까 하는 문제였다. 카드는 가입하는 쪽으로 나왔고 나는 가입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해줬다.&lt;/p&gt;

&lt;p&gt;친구는 실제로 동창회에 가입했고 처음 한두 번은 모임에 참석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싫증이 났는지 지금은 그 모임을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했다. 가입하는 선택은 했지만 그 마음이 계속 이어지지는 않았던 것이다.&lt;/p&gt;

&lt;p&gt;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생각하는 타로의 범위를 다시 생각해봤다. 타로점은 가까운 미래를 보는 것이지, 1년 이후처럼 먼 미래까지 확실하게 말해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 주변 환경도 달라지고 사람의 마음도 수시로 변한다. 가입하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그 모임을 오랫동안 좋아할 것인지까지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lt;/p&gt;

&lt;p&gt;타로 가게를 차리는 일은 접었지만 타로 자체를 그만둔 것은 아니다. 가게가 없어도 친구에게 카드를 봐주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는 남아 있다. 지금 내게는 큰돈을 들여 새로운 일을 벌이는 것보다 부담 없이 계속할 수 있는 취미로 두는 것이 더 맞는 것 같다.&lt;/p&gt;

&lt;h2&gt;새벽 4시, 나만의 하루 시작 루틴&lt;/h2&gt;

&lt;p&gt;요즘은 새벽 4시쯤이면 그냥 눈이 떠진다. 알람을 맞춰놓고 억지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눈을 뜨면 음악을 좋아하니까 음악방송을 틀어놓는다.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고 가볍게 스트레칭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lt;/p&gt;

&lt;p&gt;그 뒤에는 텔레비전을 켠다. 뉴스를 보기도 하고 오락물을 보기도 하고 스포츠도 본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다. 어떤 날은 아침인지 점심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시간이 느긋하게 흘러가기도 한다. 정해진 시간에 챙겨 먹기보다 배가 고플 때 대충 먹는 날이 많다.&lt;/p&gt;

&lt;p&gt;밥을 먹고 나서는 동네를 한 바퀴 걷기도 하고 목욕탕에도 간다. 집으로 돌아와 휴대폰으로 이것저것 보다 보면 어느새 저녁이 된다. 저녁에 배가 출출하면 막걸리 한 잔을 마시고 잠자리에 든다. 특별한 약속이 없는 날은 대체로 이런 식으로 하루가 흘러간다.&lt;/p&gt;

&lt;p&gt;겉으로 보면 매일 비슷한 하루일 수 있다. 나도 가끔은 하루가 별다른 일 없이 그냥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예전처럼 정해진 일을 하러 나가지도 않고, 새롭게 도전하겠다고 크게 움직이는 일도 많지 않다.&lt;/p&gt;

&lt;p&gt;그래도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음악을 틀고 따뜻한 물을 마시는 시간은 내가 직접 시작하는 시간이다.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움직이는 것도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다. 큰 도전은 생각만큼 쉽게 실행하지 못해도 새벽 4시에 일어나 내 하루를 여는 일은 오늘도 할 수 있다.&lt;/p&gt;

&lt;p&gt;내일 새벽에도 눈이 떠지면 음악방송을 틀 생각이다.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고 천천히 몸을 풀 것이다. 지금의 나에게는 그렇게 하루를 다시 시작하는 일이 가장 현실적으로 계속할 수 있는 계획이다.&lt;/p&gt;</description>
      <category>노인</category>
      <author>dobadalif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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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6 Aug 2026 16:48:3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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